updated on Feb. 2., 2010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관한 이안 바버의 네가지 유형: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이 여러 면에서 유용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하고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갈등관계를 언급하며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로 창조과학을 들곤 하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창조과학자들도 과학과 신앙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통합주의자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여러 형태의 유형들을 다시 새롭게 분류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유형: 현대과학이 자신이 믿는 신앙관과 모순이 될 경우 현대 과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것.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 운동은 이런 태도의 극단적인 예이다. 또 다른 예로는, 진화론이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여전히, “현대 과학에도 한계가 엄연히 있는데, 그것 때문에 기존 성경 해석을 수정하는 것은 신앙의 권위보다 과학을 우상시하고 높혀서 현대적 사조에 타협하고 굴복하는 것이아닌가. 여전히 과학이 틀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다. 기존의 창조과학 운동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일부 기독교 세계관 운동도 그 기본적인 마인드는 다분히 이와 같았다고 여겨진다. 그들이 말한 기독교 세계관이란 결국 자신들의 ‘성경 해석에 따른 관점’이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의 학문을 재조명한다는 명분 뒤에는, 기존 학문의 주장들 중 자신들이 믿는 신앙관에 어긋나는 것이 있을 경우, 기존 학문의 성취를 일단 의심하면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재구성하려는 동기가 숨어있었다.
이런 입장을 취하면서 하는 학문 활동은 결국, 자신들이 견지하는 신앙적 전제에 모든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사이비 학문이나 아마추어적인 나이브한 ‘기독교 학문’으로 전락하기가 쉽다. 또한, 자신들의 관점을 다른 모든 사람들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을 복음 전파, 혹은 문화 사역으로 생각하는 ”정복자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이런 관점을 과연 전적으로 포기할 수 있을까? 여전히 크리스천들은 성경이나 신앙을 통해 진리와 구원의 길을 찾고, 세상을 변혁시키기 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첫번째 유형이 주는 함정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이런 질문에 답하려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두번째 유형을 택할 것이다.
두번째 유형: 과학과 같은 학문이 이룬 성취가 타당하고 그 근거가 분명할 경우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 과학의 결과들이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실용적인 용도로 활용되고 도덕적, 종교적 가치 판단에 이용되는 일들에 있어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신앙적 가치에 따라 크리스천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
이런 태도를 취할 경우, 첫번째에 비해 성경을 해석하는 면에 있어서 상당히 온건하고 유연하면서도, 현대 과학의 성취와 전통적인 신앙관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이야기를 역사가 아닌 비유로 해석하는 유연성을 갖으면서도 창세기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전통적인 신앙적 관점과 일치하도록 해석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적인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가지 문제가 남는다. 즉, 여전히 첫번째 유형이 제기하는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현대 과학의 성취가 암시하는 것이 전통적인 신앙관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진화론과 “전능자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과연 양립할 수 있을까?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진화의 과정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주권이 개입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한 예이다. 그러나, 진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적 현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진화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 인간 내에 잠재된 이기적인 생존 본능이 초래하는 여러가지 비극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신정론이라는 해묵은 질문에 봉착한다.
이런 점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번째 유형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세번째 유형: 과학의 성취를 통해 전통적인 신관과 성경 해석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
이는 지적인 성실성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앙인들이 외면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예로는 과정 신학이 있다.
하지만, 세번째 입장을 취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번째 입장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세상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 하면서 진리의 길을 고민하고 살아가는 일은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두번째와 세번째 입장을 순환적으로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실천적으로 신앙적 전통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어쨌거나 여기서 내가 말한 유형들은 크리스찬의 입장에서 생각한 유형들이기에 이안 바버가 말하는 것들에 비해 그다지 보편적일 수는 없다.
More elaboration is needed, of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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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유형론으로 분류해보기 — 별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