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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결정론

어제 버스를 기다리다가, 책을 한권 써보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과학하는 사람이 자기 경력에 도움이 되는 논문만 쓰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닌 듯 하고, 더군다나 지금처럼 외국에 살고 있을 때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많은 한가한 때이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역시 가장 유익한 주제는 “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화하는 우주. 그리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결정론적 사조의 붕괴.  일전에 프레시안에도 올라갔던 글의 주제를 좀더 자세하게 풀어서 차분히 설명한다면 어떨지.

여전히 많은 크리스천들(그리고 아마도 적지않은 이슬람 신앙인들 역시)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한 방법”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적설계론자들도 진화의 사실을 일부 인정하곤 한다. 아마도 더 큰 이유는 신앙인들이 진화론이 밝혀주는 “비결정론적인” 자연의 본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자연을 인정한다면 18-19세기 이후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신학적 결정론’이 붕괴함을 뜻한다.  지적설계론자들이 시도한 것은, 본질적으로 진화론과 신학적 결정론을 조화시키려고 한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들은 사이비 과학으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인문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경우 과학의 환원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많은 대중 과학 서적들도 혼돈이론이나 양자 역학 등을 말하면서 현대과학의 일부 성취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 종교 등에 암시하는 의미까지 충분히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현대인들은 ‘과학’이라는 말을 할 때 현대 과학보다는 뉴턴의 사과 떨어지던 시절의 과학을 떠올리곤 한다. 이는 오늘날 크리스천의 성경 해석에도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근본주의 신앙이라는 문제는 단순히 교리적 경직성에서 벗어나거나 표면적으로 진화론을 수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현대 과학의 본 모습을 올바로 알리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일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Tatusko라는 신학자가 블로그에 신학적 결정론에 관한  좋은 글들을 올렸다:  

euthanizing the word “unbiblical”

determinism: a core problem with piper

200 years of god denying evilutionism or, darwins birthday

신학적 결정론”에 대한 1개의 댓글

  1. 서울비의 알림…

    신학적 결정론 :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한 방법”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진화론이 밝혀주는 “비결정론적인” 자연의 본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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